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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대를 이어온 도자공예...김정옥 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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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08-02-15 14:33 조회6,76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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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뿌연 장작 연기 속에서 가마옆에서 불을 지켜보고 있는 김정옥 명장.
▲ 작은 구멍을 통해 가마속을 들여다보면 불속에서 구워지고 있는 작품들을 볼 수 있다.

구름도 넘기 힘들어 잠시 쉬어간다는 문경새재.


이곳에 들어서면 까만 연기가 피어오르는 광경을 가끔 볼 수 있는데 이는 가마에서 장작이 타오르며 뿜어내는 연기다.
이 연기의 진원지를 찾아가보면 영남요(嶺南窯)라는 푯말과 함께 중요무형문화재 제105호라고 씌어진 커다란 돌기둥과 마주친다.


사기장 백산(白山) 김정옥 명장의 작업장과 전시실이 있는 곳이다.
사기장(沙器匠)이란 사토(沙土) 등으로 그릇을 만드는 기술 또는 그 기능을 가진 사람을 말하는 것으로 지난 1996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보호하고 있다.
보유자 김정옥(64. 경북 문경시 문경읍 진안리) 명장은 이곳 문경에서 200여년 동안 내려온 사기장의 가업을 이어받으며 7대째 백자와 사기그릇을 만들고 있다.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연기가 나는 가마로 향했다. 어김없이 김 명장이 가마의 불을 지켜보고 있었고 옆에서는 “넣어”라는 구령에 맞춰 직원이 장작을 넣고 있었다.


“가마에 불을 지필 때는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어요. 계속 안을 들여다봐야 하기 때문이니까 섭섭해 하지 말고 옆에 앉아서 같이 불이나 지켜봅시다.”라며 옆자리를 쓱쓱 치우며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 섞인 말로 맞이해주는 김정옥 명장.
아들과 자리를 바꿔 전시실로 들어선 김 명장은 차를 준비하며 “때 맞춰 잘 오셨네, 저 가마는 2달에 한번 꼴로 불을 피우는데.”라고 말한다.


영남요 한쪽에 마치 커다란 누에처럼 누워있는 이 가마는, ‘망댕이’라는 구운 흙벽돌로 천장을 쌓아 만든 ‘망뎅이 가마’라는 것으로 내부는 여러 칸의 구조로 되어있다.


“망댕이 가마는 조상 때부터 사용해오던 전통 사기 가마에요. 이곳으로 이사 오기 전 내가 태어나고 기술을 익혔던 관음리에는 200년이 넘은 망댕이 가마가 아직도 불을 뿜어내고 있지요.”
어떤 학자가 망댕이 가마를 보고 없어진 줄로만 알았던 조선백자를 굽던 전통 가마라며 감회를 금치 못했다고 한다.


망댕이 가마는 관음리에 있던 도공들이 선조들의 옛 가마를 그대로 지은 것으로 크기와 내부구조, 건축기법을 고스란히 재현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선조들이 그러했듯이 김 명장 또한 망댕이 가마에는 적송(赤松)만을 연료로 사용하고 있는데, “도자는 흙과 불의 조화 속에서 탄생하는 예술품입니다. 그만큼 불도 중요하다는 말로, 장작을 연료로 사용하면 다른 연료에서는 얻을 수 없는 오묘한 조화를 얻어낼 수 있습니다.”라고 김 명장은 전통 방식을 고집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18세부터 선친으로부터 사기 제작기술을 배웠다는 김 명장은 “고려청자 조선백자 등 옛 선인들의 작품을 많이 보고 느껴야 합니다.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변하더라도 전통을 잇는 계통에 있어서 후세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라고 말하며, “우리 것은 우리방법 그대로 만들어야 합니다. 일이 번거롭다고 어렵다고 잔꾀를 부리면 우리 것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라며 역시 정통성을 강조한다.

김 명장이 요즘 만드는 작품은 사발, 항아리 등의 청화백자와 차 사발 등 사기그릇 등인데 그중에서도  가장 정감이 가고 눈에 띄는 것은 코발트 안료로 간략한 그림을 넣은 청화백자이다.

마치 골동품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오랜세월 김 명장의 작업 속에서 얻어낸 결실이다.


투박하면서도 정갈한 그의 작품은 이미 일본에 널려 알려져 있어 수차례 일본 전시를 해오고 있다. 지금도 대량 주문을 받아 일본에 수출하기도 한다는 영남요.
그의 작품에는 화려함은 없다. 하지만 무명빛 바탕에 그려진 푸른 포도문양은 그의 성격과 우리 민족의 소박함을 말해주는 듯하다.


“어찌 보면 그냥 동그란 점 같이 보이지만 이 문양은 조상 때부터 사용해온 포도넝쿨 문양입니다. 영남요를 상징하는 문양이기도 합니다.”

김 명장은 도자기란 단어는 너무 광대하기 때문에 “내가 만드는 그릇들은 사기그릇”이라며 서민들의 생활이 듬뿍 담겨있고 우리 민족의 소박함과 순수함을 간직한 유산이라고 말한다.


“46년 동안 흙을 만지다보니 손이 엉망이 되고 멋이란 것도 모르고 살았지만, 이 분야에서 인정받고 있고 무엇보다도 조상 대대로 내려온 일을 나로써 끝나지 않고 아들 녀석이 뒤를 이어 흙을 만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가장 보람되고 큰 자랑거리입니다.”


전통 공예를 보전하고 계승함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이자 극복해야할 난관이 ‘후계자’이다.
이미 그 맥을 잇지 못하여 단절될 위기에 처한 분야도 있을 뿐만 아니라 정통성에서 벗어나 왜곡되어지고 있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전통 공예의 현실.
이런 암담한 상황에서도 김 명장의 자랑거리는 반가운 희망의 소리임에 분명하다.


“전통 공예에 몸 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강한 자긍심과 예술가적 자세를 갖추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혼과 정성을 기울여 만들지 않고 남의 손을 빌어 만든 작품을 자기 것이라 말하는 것은 없어져야할 풍토입니다”라며 김 명장은 전통 공예가 인정받고 올바르게 계승되기 위해 필요한 덕목이라며 한마디 아끼지 않는다.


김 명장의 뒤를 잇고 있는 아들 경식(38)씨도 집안 내력을 이어받아서인지 이미 몇 차례의 전시회 등을 통해 도공으로서의 실력과 기질을 인정받았다.


“어렸을 때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면 아버지 일 도와주느라 다른 친구들처럼 축구도 못하고 놀지도 못하는 것이 싫었는데, 언젠가부터 아버지의 작업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해야할 일’이라는 사명감 같은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하는 김경식씨.

집안 내력은 무시 못 하는 것일까.


대학을 졸업하고 육군 대위로 제대한 그가 도공의 길에 들어서겠다고 하자 말리는 사람들도 없지 않았지만,

힘들고 고달픈 길을 이겨내며 또한 낮에는 선친의 일을 돕고 밤에는 혼자 작업실에서 연마를 하면서 새삼 아버지를 존경하게 되었다는 김경식씨는,

“처음 1년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군대 7년 생활을 마치자마자 도자기 막일부터 배우려하니 적응이 안되더군요. 하지만 밤마다 졸음 참아가며 작업실에서 혼자 공부를 했는데 그렇게 한 3년 하니까 아버지하시는 일에  대한 눈이 뜨이더라고요.”라며 힘들었던 지난 세월을 말한다.


선친의 이름에 해가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전통 공예의 맥을 제대로 잇기 위해 자신과의 싸움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김경식 씨는 “95년부터 시작했으니 이제 10년이 됐네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더 많이 배우고 익혀야한다는 마음뿐입니다.”라고 말한다.


앞으로의 소망에 대해 질문하자 “집안 대대로 만들어온 청화백자를 계승하여 더 발전시킬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물론 피나는 단련의 시간을 거쳐야하겠지요. 그리고 제가 그랬듯이 내 뒤를 아들 형제 중 하나만이라도 이어주길 바랄뿐입니다.”라고 말하는 김경식의 눈에서 도공의 집안, 나아가 전통 도예의 맥을 잇고자 하는 그의 강인한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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