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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화-우리옷 이야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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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08-02-15 14:10 조회7,90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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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역사에서 여성이 가장 억압받는 시기는 언제였을까? 아마도 조선시대일 것이다. 특히 조선후기는 성리학적 이데올로기를 가진 지배층에 의해 여성의 억압은 더욱 심해진 듯 하다.

이 시기의 여성은 내외법으로 인하여 집안에서만 존재하는 역할이 되었다. 여성의 얼굴을 가리고 외출을 해야만 하는 이 시기에 다양한 쓰개가 등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풍속화를 통해서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기 여성의 모습은 상당히 에로틱하다.
짧고 몸에 꼭 끼는 저고리는 젖가슴이 드러나고 곧 뜯어 질 것만 같다. 다소곳한 조선시대 여인네를 상상한다면 이건 달라도 한참 다르다.


조선 전기에는 긴 저고리와 함께 주름을 깊게 잡은 넓은 폭의 치마를 허리에서 착용하여 전체적으로 H-Line의 실루엣이었다. 그런데 저고리 길이가 짧아지는 18세기의 치마 실루엣은 엉덩이 부분을 크게 부풀린 항아리형 실루엣으로 변화하여 작고 조그마해진 저고리와 함께 다양한 착용방식의 기교가 가해지면서 치마는 한껏 풍성하게 하여 글래머의 몸매를 표현하고 있다.

 이런 실루엣은 속옷을 겹쳐 입는다 하여도 웬만큼 치마폭을 넓게 하지 않고서는 풍부한 항아리형 실루엣을 만들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치마의 엉덩이 부분을 크게 부풀리면서 치맛자락을 가슴부위로 걷어 올림으로써 속에 입은 속바지가 드러나는 모습도 나타나는데, 이 속바지에도 장식이 가해진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치마의 착용 방법은 겉으로 드러나게 된 속바지의 밑단부분을 장식적으로 발달시키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특히 이 시기 여성의 바지는 속옷으로 다양하게 분화, 발달하는 양상을 보이는데, 이는 남녀간의 내외법(內外法)이 강조되면서 복식을 통한 여성성의 인정 내지 성적(性的) 이미지가 강조된 결과로 해석된다. 이는 조선 후기 성리학적 사고가 오히려 우리 복식의 새로운 미감을 형성하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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