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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에 혼을 심는 배방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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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08-02-15 13:46 조회7,17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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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아산의 성웅 이순신 축제때 출품했던 이순신 장승과 솟대 앞에 서있는 배방남 옹.
 ▲장승축제때 만난 한 어린이가 장승은 모두 키가 크다는 말을 하자 배방남 옹은 어린이들을 위한 키높이 장승을 만들었다.

충남 천안시 풍세면에 가면 3년 전부터 자신의 공방에서 우리의 전통 장승을 세워 ‘장승축제’를 여는 사람이 있다.   그 주인공이 바로 청운(靑雲)  배방남(64세) 옹이다. 37년 동안 장승을 깎아온 배방남 옹은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에서 태어나 5살 때 아버지를 따라 한국으로 건너와 18살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공예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군 제대 후 1967년부터 천안에 거주하면서 전통 공예의 맥을 잇는 작업을 하고 있는 배방남 옹은, “할아버지는 석공예를 하셨고 아버지는 금속공예를 하셨어요. 아버지 친구 분은 유명한 석공이셨구요. 그분들에게서 자연스레 공예 일을 배우게 되었어요.”라고 말하니, 3대째 전통 공예 일을 하고 있는 장인이다.  
탈을 만들어 일본에 팔러 다니던 시절, 우리의 백제문화가 일본에서 마치 일본의 것인양 있는 것을 보게 되었고 이를 안타깝게 생각한 그는 “우리의 백제문화가 일본에 있는 것이 마음 아팠어요. 분명 우리것인데 우리 땅에는 없고... 그래서 백제 문화 복원이라는 큰 뜻을 가지게 되었어요.”라고 말하는 그는 전통문화에 대한 연구를 하던 중 장승에 매료되었고 이때부터 장승을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장승이란 마을이나 절 입구, 또는 길가에 세우는 사람머리 모양의 기둥을 말하는 것으로 20년 전만해도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으나 새마을 운동과 미신타파 운동 등으로 없애거나 방치하여 많이 사라졌다.
장승을 세운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학설이 있으나 마을의 안녕과 나라의 평안, 사악한 기운을 물리쳐 재액을 막기 위함이라는 설이 가장 타당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장승은 우리들에게 무척 친근감 있는 대상이었어요. 지역의 경계를 나타내기도 하고 이정표의 역할도 하고 무엇보다도 마을 입구에서 잡귀를 물리쳐 마을을 평안하게 돌봐주고 나라의 평안을 지켜주는 수호신이었지요.”라고 배방남 옹은 말한다.  

장승은 돌로 만든 석장승과 나무로 만든 목장승이 있으며, 장승은 지역과 시대에 따라 장성. 장승, 벅수, 법수, 당산 할아버지 등 부르는 이름도 다양했다.
지금은 배방남 옹이 만든 장승이 한국의 집, 안면도 꽃 박람회장 장승공원, 무형문화재 전수회관 등 우리나라 여러 지역 뿐만 아니라 일본이나 동남아 지역까지 분포될 정도로 인정 받는 장승 조각가지만 어려움 또한 많았다고 한다.

“내 민족사를 위하고 민족문화를 위해서 고통과 시련을 겪으면서도 백제문화를 살려보겠다는 마음으로 고생을 감수하고 있습니다. 올바른 교육을 통해 후손들에게 우리의 토속문화를 물려주고 싶은 마음입니다.”라며  힘들었던 지난날을 회상하 듯 말한다.

“우리 후손들에게 제대로 우리 토속문화를 전해주기 위해 이일을 하고 있는 겁니다. 내 생활을 위해서라면 벌써 딴 짓 했을 거예요.”라며 웃음을 지어 보이는 배방남 옹은, “우리는 우리 토속문화를 후손들에게 올바르게 물려줘야 합니다. 그래서 장승축제를 시작하게 된거구요.”라고 말한다.

2000년 2월 제 1회 장승축제를 시작으로 올해까지 5회를 마친 배방남 옹은, “내가 어릴 때부터 장승을 많이 보고 만져보고 느껴왔던 것처럼 후손들에게도 이런 기회를 갖게 해줘야겠다라는 마음에서 시작했지요. 토속문화가 점점 잊혀져가고 사라져가는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한 끝에 시작한 겁니다.”


장승을 땅 속에 심는 것도 우리의 전통 풍습과 관습에 따라 심어야 한다며, “장승을 땅에 묻을때도 그냥 묻는게 아닙니다.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장승을 세운 후 황토, 소금, 숯을 넣고 흙을 덮어 마무리 합니다. 그리고 막걸리 뿌려가며 장승제를 지냅니다. 마지막으로 왼손으로 꼬은 동아줄을 돌려놓고 오색천을 걸어야만 제대로 장승을 묻었다고 할 수 있는 겁니다.”라고 말한다.
지난 1998년 전승공예대전에 출품하여 장려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그는 현재 석장공예 부문 무형문화재 기능인 선정 심사 중에 있으며 요즘은 공예대전에 출품할 작품 작업으로 분주하다. “국전에 참가하는 이유는 상을 바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작품이 출전함으로써 우리 문화를 후손들이 한번이라도 더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우리 문화를 알리기 위해서 출전하는 겁니다.”라고 말한다.

배방남 옹 자신이 이토록 우리의 토속문화를 사랑하고 아끼는 이유는 우리 후손들에게 전통문화를 올바르게 물려주기 위함이라며, “이 일은 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계속 할 것입니다. 그리고 올바른 교육이 있는 곳이라면 맨발로라도 뛰어갈 겁니다. 우리의 토속문화가 제대로 알려만 진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으니까요.”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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