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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대금사랑...대금산조 이생강 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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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08-02-15 13:12 조회8,47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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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금은 우리나라 관악기 중 으뜸으로 꼽을 수 있으며, 대적(大笛)이라고도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1400년전 신라 신문왕때 만들어진 오랜 역사를 가진 악기입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45호 대금산조 예능보유자 이생강(37년생, 서울 성북구 삼선동) 명인이 대금을 소개하는 첫마디이다.


대금은 대나무로 만든 공명악기로 저 또는 젓대라고도 한다.
피리류의 악기로 중금, 소금과 더불어 삼죽(三竹)이라하여 신라악에 편성되었으며 신라시대의 대금곡이 324곡에 이른다고 「삼국사기」에 기록이 전해진다.


신라 제31대 임금인 신문왕때 만들어졌다는 기록이 「삼국유사」만파식적(萬波息笛)조 있으며, 조선 성종때의 「악학궤범」에서는 대금을 해묵은 황죽(黃竹)으로 만든다고 전해진다. 오늘날은 살이 두껍고 단단한 쌍골죽(雙骨竹)을 제일로 친다.

“국악은 궁중음악과 민속음악으로 구분하며 대금도 두가지 종류가 있는데 궁중에서 사용되는 정악대금과 민속음악에서 사용되는 산조대금이 있습니다. 내가 사용하는 대금은 산조대금입니다. 현재 궁중음악은 국립국악원이 주체가 되어 국가적으로 지원을 받으며 양성하고 있지만 민속악은 체계적인 지원이 없는 실정입니다.”며

“정악은 국가에서 정립을 잘해나가고 있지만 민속악은 그렇지 못하고 있습니다. 민속악은 소리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기 때문에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많은 변화를 보입니다. 또한 민속악은 개인기가 뛰어납니다.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입니다.”며 이생강 명인은 말한다.


이웃집 아저씨처럼 푸근해 보이지만 국악에 대한 소견을 피력할 때는 누구보다도 정열적이고 당당한 모습을 보이는 이생강 명인.
그는 1937년 일본에서 태어났고 해방과 더불어 귀국하였다. 5살 때부터 국악기를 불기 시작했다는 그는, “처음엔 손에 닿는 악기부터 불기 시작했지요. 피리, 소금, 단소, 퉁소 등을 불기 시작하다가 대금은 8살 때 불기 시작했는데 본격적으로 대금을 배우기 시작한 것은 대금의 명인 한주환 선생을 만나면서부터”라고 말한다.

그가 10살 되던 해, 장사를 하시던 아버지를 따라 전주역 근처 식당에 들렀다가, 그곳에서 두루마기 옆구리에 대금을 꽂고 다니던 한주환 선생을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 대금은 흔하지 않은 악기였고 국악기에 조예가 깊었던 이생강 명인의 아버지 눈에는 두루마기 속의 대금이 크게 보였다고 한다.


대금산조는 대금의 명인 박종기(朴鍾基. 1879∼1939)에 의하여 처음 불려지기 시작했다고 하나, 전남 화순 출신의 한숙구(본명:한승준.1849~1925)가 먼저 시작한 것으로 한숙구, 박종기 선생으로부터 사사받은 한주환 명인이 그 뒤를 잇고 있었고, 이렇게 우연히 만난 인연으로 선생과 제자가 되어 이생강 명인이 대금산조의 맥을 잇고 있는 것이다.
산조(散調)란 ‘허튼가락’이란 뜻이며 무속(巫俗)음악의 시나위 가락과 판소리의 가락과 장단에서 영향을 받아 19세기 말엽부터 생성되어 발전되면서 전해져오는 기악 독주곡이다.


“산조는 생동을 표현하는 곡입니다. 우리나라의 춘하추동, 대자연, 우주의 삼라만상을 연주하고 있는 것입니다.”며 말하는 이생강 명인은, “대금산조는 대금이라는 악기를 통해 우리의 삶과 애환을 표현하기도 하고 대자연의 역동적인 움직임도 표현합니다. 이렇게 대금은 정말 우수한 악기입니다.”며 다시 한번 대금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다.


이생강 명인은 해외에서 음반을 발매할 정도로 이미 세계적인 연주가로 알려져 있다.
그가 유명해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60년 5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1회 세계 민속예술제에 한국민속예술단의 단원으로 참가하였을 때다. 한 단원이 맹장수술로 인해 공연시간에 차질이 생기자 행사를 담당했던 유네스코(UNESCO) 관계자가 이생강 명인에게 대금독주를 권유했고 그는 즉석에서 대금독주를 했다고 한다.


연주가 끝나자 관객들은 기립박수로 연주자를 맞이해 주었고 다음날 신문에서는 ‘신의 소리’, ‘자연음의 극캄, ‘벌들이 꿀을 따오는 소리’ 등의 극찬이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그땐 대단했었어요. 세계인들이 보는 자리에서 우리의 대금 하나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으니까요.”라며 이생강 명인은 지난날의 감동을 회상하며 말한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도 알려지지 않았던 그때, 대금이라는 작은 악기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서 이생강 선생은 세계 70여 개국을 돌며 공연을 했다고 한다.
이생강 명인은 공연 뿐만 아니라 음반 작업도 적극적으로 하여 현재까지 400여장의 음반을 발매했으며 10월에 발매된 ‘추억의 소리’는 우리의 대중가요인 황성옛터, 오빠생각 등을 수록한 앨범으로 국악기의 5음계로도 충분히 서양의 8음계를 소화할 수 있다는 것을 들려 줄 뿐만 아니라 좀더 국민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기 위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테크닉이 중요합니다. 5음으로 8음을 들려주려면 그만큼 노력과 시행착오 등을 바탕으로 한 기술과 기교가 필요한 것입니다. 대금의 구멍을 적절히 막거나 여는 방법으로 충분히 소리를 들려줄 수 있는 것이지요. 오로지 최고가 되기 위한 연습만이 우리 국악이 발전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며 이생강 명인은 말한다.


그는 우리의 국악이 당면한 과제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정통성이라고 말한다.
“정통(正統)의 중요합니다. 우리의 전통음악이 올바르게 이어져야 합니다. 모든 전통문화가 그렇듯이 전통음악도 원형을 무시하면 살아남지 못합니다. 우리에게 전해져온 음악도 정통을 바탕으로 하여야 하며, 다음세대에 물려줄 음악도 정통으로 계승시켜야 합니다.”라며, 이생강 명인은 우리나라 국악의 활력을 불어 넣기 위해서라도 꾸준히 노력하고 후계양성에도 힘쓸 것이라고 말한다.


이생강 선생의 스승은 모두 23명.
단소 스승이 4분, 퉁소 스승이 4분, 대금 스승이 3분 등 모두 23명의 당대 최고 연주가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생강 명인을 부는 악기의 대가라 일컫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대금은 끝이 보이질 않는 악기입니다. 다른 악기들도 다룰 줄 알지만 대금은 한계를 아직까지 느껴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대금을 가장 사랑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나는 대금을 ‘살아있는 대나무’라고 말합니다. 살아있기 때문에 무한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라며 ‘대금 사랑론’을 펼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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