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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공예품 구입은 전통공예를 살리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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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08-02-15 11:18 조회7,50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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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전주시는 한지의 고장으로 이곳에서는 한지를 이용한 많은 공예작업이 활발한 곳이다.
전주의 특산품인 합죽선(合竹扇).
플라스틱 부채와 값싼 중국산 부채에 밀려 그 존재마저 위태로운 현실 속에서도 꿋꿋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세월의 유혹에 굴하지 않는 장인이 있다.


그가 바로 전통 합죽선을 만드는 한경치(韓京致. 54. 전주시 완산구 효자동)씨.
“합죽선은 단순한 부채가 아닙니다. 벗이고 나의 분신이기도 하기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정이 쌓입니다”고 말하는 한경치 씨.

    
 

 합죽선(合竹扇)이란 질 좋은 대나무의 겉대만을 얇게 깎아 서로 합하여 만들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마디가 짧은 대나무를 엄선하여 단단한 대나무의 겉대만을 하나하나 손으로 깎아 만들기 때문에 장인의 땀과 혼이 깃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합죽선은 고려시대 처음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고려시대 때 깊은 산중에서 수행을 하던 스님이 속세와의 인연을 끊지 못한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자신의 옆에 둘 노리개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합죽선이라고 합니다”며

“접어놓은 합죽선을 보면 손잡이 소뼈 부분은 여인의 머리를, 양쪽으로 연결된 고리는 비녀를, 손잡이 부분은 윗저고리를, 곡선을 이루며 길게 뻗은 부분은 치마를 상징하는데 실제로 보고 있노라면 하얀 치마를 두른 여인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며 합죽선을 보여주며 설명한다

또한 속대에 들어가는 부채살 중 좁고 기다란 장시는 남자를, 넓고 짧은 내시는 여자를 뜻한다고 한다.


합죽선을 완성하기까지는 총 108번의 공정을 거쳐야하는데 그중에서 가장 힘든 과정은 여인의 자태를 떠올리게 하는 곡선을 이루는 과정이라고 말하는 그는,

“한 과정 한 과정 모두 중요하지만 합죽선의 매력은 무엇보다도 곡선의 아름다움입니다. 이런 맵시를 표현해내기 위한 과정이 가장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이 과정에서 장인의 기술과 숙련도 및 내공을 엿볼 수 있습니다”고 말한다.


합죽선을 만드는 과정을 살펴보면 대나무를 깎아 속대와 바깥 양쪽에 들어가는 ‘변죽’이라는 부채살을 만드는 골선방, 살대에 인두로 박쥐와 국화, 쪽매화 등 문양을 새겨 넣는 낙죽방, 부채살을 매끄럽게 다듬는 광방, 부채의 고리를 ‘사북’이라 하는데 사북을 다는 사북방,  부채살에 한지를 붙이는 도배방, 한지에 그림이나 글씨를 그려 넣는 그림방으로 이루어진다
합죽선에 들어가는 문양 중 박쥐문양은 박쥐의 활동이 밤에 이루어지듯 남녀가 눈이 맞으면 밤에 만난다는 것을 뜻하고, 국화문양은 서리가 내릴때 꽃을 피우고 눈을 맞으며 지는 국화처럼 여자의 절개를 의미한다고 한다.


합죽선은 부채살과 길이에 따라 종류가 다양한데, 부채살의 수에 따라 5살 간격으로 10살 부채에서 35살 부채, 40살 부채, 45살 부채, 50살 부채가 있으며, 길이가 23cm, 27cm, 30cm, 40cm에 따라 소선, 중선, 대선, 특대선으로 나뉘어진다.
일반적으로 변죽을 합하여 40살 부채가 가장 보편화되어 있다.


한경치씨는 어린시절부터 합죽선과 인연이 있어 장인의 길을 걸어온 것이 아니다.
그의 스승이자 장인어른인 이기동(전북지정 무형문화재 제10 선자장 합죽선 기능보유자) 선생으로부터 어느날 합죽선을 배워보지 않겠냐는 권유를 받았고 부산에 살던 그는 살림을 정리하고 곧장 전주로 올라와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때가 그이 나이 27세.


스승 밑에서 8년 동안 기술을 배웠다는 그는, “그땐 입만 먹고 살았습니다. 밥만 먹고 살았다는 뜻입니다. 월급같은 것은 없었지요. 기술을 배우면 다 괜찮다고 생각했으니까요”며 지난날을 떠올리듯 소박한 웃음을 짓는다.

기술을 배우고 독립하여 ‘한진공예사’라는 간판을 걸고 합죽선 제작을 시작하여 27년 동안 한눈팔지 않고 오로지 합죽선의 길만을 걸어오고 있다는 그는,

“수입이 적고 일은 고되지만 마음만은 편안합니다. 물질에 치우치면 작품다운 작품을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배운다는 마음으로 일에 전념”하고 있다면서 “곧은 마음과 공력이 들어가야 가장 아름다운 합죽선이 탄생”한다고 전한다.


군 제대를 앞두고 있는 그의 아들이 합죽선에 매력을 느껴 그의 뒤를 이어 전통공예의 맥을 이어갈 것이라며 “요즘 사람들은 수입이 없고 힘든 일은 안하려고 합니다. 전통 공예의 소중함을 알리기 위해서라면 나 하나라도 그 맥을 유지시켜야한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다행히도 아들 녀석이 그 뜻을 이해했나 봅니다”며 말하는 한경치씨에게서 전통공예를 소중히 아끼는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주로 양반들의 소장품이었던 합죽선은 바람을 일으키는 단순한 부채로만 사용된 것은 아니다. 남의 집을 들어가면서 얼굴을 가리기도 하고 먼지나 바람 등을 막을때도 사용했으며 길을 가다 반갑지 아니한 사람을 만났을때 자연스럽게 얼굴을 가리고 지나치기도 했다. 또한 시를 읊거나 노래 가락에 장단을 맞출때도 사용했으니 일년 내내 허리춤에 꽂고 다녔다고 한다.


한경치씨는 “지금은 공예품이나 문화 상품으로 전락하여 합죽선을 많이 볼 수 없지만 합죽선은 가장 친한 벗과 같았습니다. 우리나라의 합죽선은 부채 이상의 의미를 간직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디 전통 수공예로 만든 합죽선을 외면하지 말고 정말 좋은 작품 하나 간직하여 조상들의 생활과 풍류, 멋 등도 감상해 보고 전통공예인들에게 희망을 안겨주었으면 고맙겠습니다”며 당부의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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